제목만 덜렁 적어놓고 몇 분째 화면만 바라보고 있는지 모르겠다. 시작이란 이리도 어렵다.
지금껏 나도 블로그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이 여러번 있었다. 특히 짧게나마 외국에 있었을 때가 그랬다.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를 가로막던 생각들이 있다.
현실에 충실하자는 생각이다. 나는 멀티태스킹이 되지 않는 인간이란 걸 스스로 잘 알고 있었다. 블로그를 시작하는 순간 실생활이건 블로그건 어느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스트레스만 받을 게 분명했다.
블로그를 하기 전에 일기나 쓰라고 스스로 생각했다. 기록의 중요성은 느끼고 있었다. 어디에 기록을 할 것인가가 문제였는데, 그 문제에 앞서 나는 무엇을 기록하고 싶은가 하는 문제에 정확히 답하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블로그에 남길 만큼 세상에 유용한 지식도 정보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정보가 넘쳐나는 요즘같은 세상에 쓰레기를 만들어 내고 싶지 않았다. (과거형으로 썼지만 사실 현재진행형이다.)
내 글쓰기 실력이 눈뜨고 봐줄 수 없을 지경이기 때문이다. 난 글쓰기에 재능이 없다. 거기에 더해 난 개인적으로 제대로 된 글쓰기 교육을 받은 적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훌륭한 글을 많이 읽어 좋은 글쓰기를 체득했느냐 하면 그것도 아니다.
그런 내가 블로그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행동력이 심히 부족하고, 지나치게 수동적인 나같은 인간이 결심 씩이나 하다니 스스로 조금 비웃음이 나지만 그래도 칭찬해 주어야겠다.
딱히 현재 현실에서 충실하게 하고 있는 일이 없다. 블로그라도 하자는 생각에서다. 물론 제대로 된 블로그를 하는 것은 상당한 능력과 노력이 필요하겠지만, 그냥 끄적거리기용 블로그도 있으니.
도통 일기조차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기쓰기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싸이월드가 유행할 때는 다이어리란 것에 장문의 일기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일기는 종이에 써야지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나는 내 글씨를 보고 있으면 화가 날 정도의 악필이고, 그 때문인지 컴퓨터의 보급 때문인지 펜을 손에 잡는 것조차 어색한 지경에 이르렀다. 결국 종이에 일기를 쓰는 고상한 취미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정보가 넘친다고는 하지만 막상 내가 필요한 것을 검색했을 때, 정보가 더 많았으면 좋겠다고 느낀 적이 많았다. 내 글의 99%가 쓰레기라도 누군가에겐 필요한 1%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쓰기 연습을 한다고 생각하고 쓰다보면 지금보다는 나은 글을 쓰게 되겠지.
사실 가장 직접적인 블로그 시작 이유는 한달 뒤 떠나는 중국에서의 29일을 기록하기 위함이다. 사진과 글을 같이 정리해 놓지 않으면 기억은 희미해져 가고 사진은 어느 폴더엔가 들어가 다시는 쳐다보지 않게 된다는 것을 지난 수차례 경험으로 너무도 잘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정말 오랜만에 집컴퓨터 앞에 진득히 앉아 있다. 어쩌면 내가 글이란 걸 아예 쓰지 않기 시작한 건 스마트 기기가 보급된 이후부터가 아닌가 싶다. 실은 컴퓨터 앞에 앉는 것이 너무 싫어, 블로깅도 태블릿으로 하려고 했는데 이내 태블릿으로 글을 쓰는 것은 아주 괴로운 일이란 사실을 깨달았다.
블로그를 어디에 개설하느냐로 잠시 고민을 했었다. 외국계정은 영 정이 안 가기 때문에 우리나라 서비스 안에서 생각을 했을 때는 네이버, 다음, 싸이, 이글루스, 티스토리 정도가 생각이 났다. 가장 만만해 보이는 건 네이버였지만 소심하게나마 가지고 있는 반골기질로 네이버는 피하고 싶었다. 그리고 네이버 블로그는 블로그 안에서 오래된 글을 읽다가 목록으로 돌아가면 최신목록으로 돌아가는 아주 치명적인 결함을 가지고 있다. 다음은 디자인이 어딘지 모르게 갑갑하고 촌스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싸이는 요즘 관리가 되고 있나 하는 의문이 들고 결정적으로 태블릿에서 싸이블로그에 들어가면 항상 경고메세지가 뜬다. 이글루스는 좀처럼 접할 기회가 없어 낯선 느낌이 강했다. 티스토리는 블로그를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하는 블로그란 이미지가 강했다. 네이버가 똑딱이 같은 느낌이라면 티스토리는 수동카메라 같은 느낌. 컴맹인 나는 겁이 났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관점에서 이미지가 좋은(?) 티스토리로 결정했다.
티스토리로 결정하고 나니 초대장이라는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어떻게 해서 초대장 배부 포스트가 올라오는 페이지를 찾았지만 대부분 자격이 까다로와 처음엔 좌절. 많은 블로그들이 기존에 블로그를 가지고 있을 것을 자격으로 내세웠다. 은혜로운 성난큰곰님 덕에 이렇게 블로그를 개설하게 되었다. 다음은 일일이 태그를 사용하여 블로그를 작성해야 할 것만 같은 티스토리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있었다. 그러나 막상 개설하고 보니 다소 개성 없고 멋 없고 깔끔하지 않은 블로그가 될 수는 있겠지만 글을 작성하여 올리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는 것 같아 안심했다. 마지막으로 워낙 많은 이들이 이용하여 중구난방인 이미지가 있는 네이버와 달리 티스토리에서는 포스트다운 포스트만 발행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이 있었는데, 그런 것은 신경쓰지 않고 지극히 개인 기록용으로 사용하기로 했다.
초대장을 받아 티스토리에 가입하려고 보니 세가지를 창작해내야 했다. 필명, 블로그 제목, 블로그 주소. 참신함이라곤 제로에 수렴하는 이 굳은 머리 탓에 남친님에게 SOS를 요청했다. 곧 나는 남친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실망스러운 현실만 깨닫게 됐다. ㅋ 그가 제시한 필명은 내 영어이름, 내 한글이름줄임, 치느님, zhaji(잉??-중국어로 치킨이라나..;;) 등..하..실망한 나머지 나는 그에게 내 블로그를 가르쳐 주지 않기로 했다.
한동안 블로그를 많이도 읽었다. 매일 다음뷰에 들어가 읽었고, 마음에 드는 블로그를 발견하면 며칠에 걸쳐 그 블로그를 통째로 읽기도 했다. 많은 블로그들이 대단해 보이고 부러웠는데, 그 중에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블로그이자 정석이라고 생각하는 블로그가 있었다. 이방인의 블로그. 이방인의 블로그 초창기로 생각되는데 다음에 들어가면 자주 메인 페이지에 올라와 있었다. 그때는 단순히 메인페이지에 올라있는 제목에 이끌려 클릭해서 읽는 정도였는데, 작년 언젠가 마음먹고 블로그 전체를 정주행했고, 이방인님의 영어 블로그도 정주행했으며 그 이후로 매일 올라오는 글을 읽고 있다. 일일일포스트를 행하고 계신데 이는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원고료를 받고서도 매일같이 양질의 글을 생산하는 일은 쉽지 않다고 생각하는데. 거기다 정시발행이라니! 구글광고가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잘나가는 블로거로서 광고유혹이 분명히 뻗쳐 올텐데 글 안에 전혀 광고적인 요소가 없다는 점. 맞춤법을 틀리는 일이 거의 없고, 문장이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고 읽기 좋게 문단배분이 되어 있다. 많은 양의 글을 써왔는데도 사생활 노출이 거의 없다. 물론 매일 글을 읽는 독자로서는 글쓴이에 대해 궁금해지기도 하지만, 사생활을 노출하지 않고도 흡입력 있는 글을 써내는 이방인님의 능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감상적이거나 감정적이지 않고 정보전달에 집중하면서도 딱딱하지 않고 재미가 있는 매끈한 흐름. 자연스러운 도입과 간결하고 유머있는 끝맺음. 하루 하나 읽기에 딱 적당한 길이. 사상적으로 치우침 없는 글. 글안에 구차한 설교나 변명이나 가르침 같은 것이 없어 글을 읽다가 기분 상하는 일도 없고. 이야기하자면 상당히 중성적인 블로그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글을 읽으면 금세 여성의 블로그라는 걸 알아차릴 수 있지만, 내 말은 여성 블로거나 남성 블로거 각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그 성만의 편향된 성질이 적은 느낌이다. 물론 각 성의 특징이 드러나는 글들도 그 글들만의 장점이 있지만, 매일 가볍게 읽는 독자인 나로서는 이방인님의 글에 특별한 매력을 느낀다. 깨끗하게 정돈되어 글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는 스킨과 정리솜씨는 덤.
마르고 닳도록 이방인님의 블로그를 찬양했지만, 전 블로그를 통틀어 짱짱맨이라는 뜻은 아니다. 블로그의 주제마다 효과적인 전달방법은 각기 다르며, 매력적인 글이란 것도 주관적이다. 단지 내 개인적인 블로그 글읽기 취향에 맞춘 찬양이다. 그리고 사실 내가 가지지 못한 부분을 가진 블로그라 더욱 좋아하는 것인 듯. 나는 상당히 치우친 사람이고 또 그런 글을 쓰기 때문이다. 감정적이고 감상적이고 정리나 꾸미기라곤 모르고 글은 장황하기 그지 없다. 이방인님의 블로그를 이상적이라고 생각하지만 이상과 현실은 별개. ㅋ
이 포스트는 첫 포스트라 장황하게 쓰지만 앞으로는 장황하게 쓰는 것은 자제하려고 마음은 먹고 있다. 그러나 그 외의 부분에서는 그냥 마음대로 쓰려고 한다.
나는 매일같이 블로그 읽는 것을 낙으로 삼으면서도 단 한 차례도 댓글이란 것을 달아 본 적이 없다. 어렸을 적부터 나서는 것을 병적으로 싫어했던 성격 탓에 댓글 달고 하는 것이 괜히 유난떠는 걸로 느껴진 점도 있고, 나는 큰 의미를 가지고 댓글을 달았는데 무시당하지나 않을까 하는 내가 가진 소심함과 찌질함 때문이다. 소심하게 나마 이방인님을 비롯한 블로거님들에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하아..도대체 몇 시간을 이 쓸데없는 글을 쓴거야.
